RED
175 0 23-06-22 10:23
늘 행복한 삶이면 좋겠지만 우리네 인생은 갈등과 상처로 가득합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화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며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몰두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하며, 어른들은 술 한 잔에 시름을 날려버리기도 하지요. 순간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어찌보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닌듯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선수들을 교사로 만날 때 늘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고 별것도 아닌 일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자신인 것처럼 생각하는 선수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겉핥기 식의 위로를 건네거나 지나고나면 별 거 아니라는 가벼운 조건을 건네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그런 조언을 했던 것은 선수들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인 실수였습니다.
선수들은 쌓인 경험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상처의 크기도, 상처를 벗어날 수 있는 마음의 단단함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호르몬이라는 녀석은 안 그래도 힘든 청소년들의 마음 속에 태풍을 일으키곤 하지요.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흑역사’라고 부르는 어린 시절의 창피한 기억들은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으려 애썼던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 시절의 내가 흑역사를 생성하며 힘든 시기를 겪어주었기에 지금의 나는 위기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고,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파도를 타며 마음의 평화를 비교적 쉽게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선수들이 겪는 고민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기회 중 한 번일 뿐인 시험 기간에 대한 스트레스도, 무시해버리면 그만인 친구의 상처가 되는 말도, 당장 먹고 싶지만 다이어트 때문에 참아야하는 떡볶이의 유혹도 선수들이 고민하는 그 순간에는 선수들 인생의 전부가 걸린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선수들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때 내가 이 친구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최대한 공감을 해보려 노력합니다. 지금의 ‘나’가 아닌 14~19세의 ‘나’로 돌아가 생각해봅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내 앞에 있는 선수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선수에게는 위로도, 조언도, 단호한 코칭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결국 저는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고 묵묵히 그 선수가 스스로 어려운 시기를 겪어나가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선수의 심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속도는 다르지만 선수들은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합니다. 이 선수들은 조만간 또 인생의 큰 시련을 겪고 힘들어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번보다는 아주 조금이라도 덜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시련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것입니다. 그래서 전 이제는 선수들과 상담을 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난 네가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다고 믿어.”라고요. 오늘도 하루하루 단단하면서 유연해지는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오작교 코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