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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칼럼

레드 칼럼 213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아갑니다.

이대로

514 0 17-06-15 18:42

레드에는 다른 학교에 없는 특이한 점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순신반’입니다. 이순신반은 학습에 흥미를 잃거나 일반수업의 진도를 따라가기 버거운 선수들이 오는 반으로 일반학교에서 보충반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보충학습을 하는 곳이 아니라 학년, 과목 구분 없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부족한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동시에 흥미를 찾아가는 곳입니다. 저는 이 곳, 이순신반을 담당하기 위해 레드에 들어왔습니다. 맨 처음 이순신반을 맡았을 때,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이순신반에 들어오는 선수들은 학습태도가 좋지 않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오는 곳이라면 학생들을 많이 가르쳐 본 경험이 없는 내가 선수들을 잘 이끌 수 있을까 이었습니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반에 온 선수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일반 수업을 듣더라도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걱정과 각오를 가지고 첫 수업을 할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첫 번째로 가졌던 걱정은 어떻게 보면 제가 불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순신반에 온 선수들이 모두 흔히 말하는 모범생들 일리는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기대치나 실망할 것 없이 제겐 0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선수들을 대하면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문제도 풀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들거나 조는 선수들을 문제가 있다고 어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을 이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도록 밀어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맨 뒤에서 가는 길이기 때문에 걱정은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걸림돌은 다른 것 보다 선수들이 이순신반에 온 걸 부끄러워하는 거였죠. “코치님, 제가 다른 과목은 진짜 다 괜찮은데, 영어만 못해서 온 거에요. 저 영어 잘하는 데 태도가 안 좋아서 여기 온 거에요. 영어는 포기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선수들은 자연스레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세를 교정하거나 조금이라도 어려운 수업을 진행하면 힘들어하고 포기하려 하였습니다. 그런 선수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감, 그리고 꾸준히 공부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의욕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선수들에게 제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학창시절에 공부한 이야기, 대학교 이야기, 취업 이야기. 이야기를 듣고 맨 처음에 선수들은 자신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라며 마치 자기자랑시간처럼 저를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라왔지만 지금까지 꿈 없이 살아온 경험을 말해주면서 선수들이 부럽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격려해주며 이런 내가 선수들과 함께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선수들의 표정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다음으로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 이 과목이 어려워서 이순신반에 온 건지, 어떤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레드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선수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 틈틈이 대화하면서 저는 이 정보들을 수업시간에 이용하였습니다. 의욕이 없는 선수들에게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선수들의 꿈을 알려주며, 재미있는 인생을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때마다 선수들은 얼굴에 생기가 돌고 갑자기 말이 많아지며 힘을 내서 수업에 참여합니다. 물론 말 뿐인지라 그 말이 끝나고 얼마 안 가서 원래의 태도로 돌아오거나 의욕을 여전히 못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도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이 선수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이럴 땐 공부보단 이야기를 하고 의욕을 자극해주어야겠다 라는 신호가 바로바로 느껴져서 그 때를 잘 넘기면 다시금 집중합니다. 결국 꾸준히 선수들을 자극하고 격려해주어서 선수들이 이를 체득하여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 하고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이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순신반은 흔히 말해 ‘빡세게 공부 안하고 이야기하는 반’ 이란 소문이 일부 선수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성적을 낮게 하여 이순신반을 들어가야겠다고 하는 선수들 말도 들었습니다. 물론 타이트한 진도와 과제가 학습량에 있어서는 필요한 요소이며 그게 부담인 선수들에겐 이순신반이 그런 반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반은 공부에 자신감이 없고 의욕이 없는 선수들이 힘을 내서 다시 일반 수업과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곳입니다. 공부하는 양은 적을지 몰라도 그 속에서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가고, 떨어진 자신감과 의욕을 끌어올리는 일은 어쩌면 배로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이 가장 간과하는 것은 바로 이순신반 선수들의 배움에 대한 갈망입니다. 성적이 낮거나 태도가 좋지 않다고 해서 이순신반 선수들이 배움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 공부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목표가 뚜렷해지면 그동안 못했다고 생각한 질문을 거침없이 해옵니다. 다른 선수들은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쉽다고 여기는 것도 이순신반 선수들에겐 모두 질문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순신반 담당인 제가 선수들 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은 게 다행일정도로 선수들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제게 질문하러 옵니다. 이런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에게 마냥 편해 보이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담당인 제가 더 노력해서 이순신반이 배움이 넘쳐흐르는 가운데 여유가 있고 선수 하나하나가 스스로 힘을 기를 수 있는 반이 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어느새 레드에 나타난 지 8개월이 되어갑니다. 레드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이순신반 선수들과 만나온 지도 그 정도가 흘렀네요. 저와 같이 이순신반을 개근하는 선수도 있고, 일반 수업을 듣는 선수도, 새로 이순신반에 오는 선수도 있습니다. 선수들도 늘어서 일주일 중 하루는 9명이 동시에 들어와서 공부할 때도 있습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을 질문하고, 배워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 느끼는 보람은, 매번 알려주어도 잊어버리고, 숙제도 해오지 않고 제 앞에서 숙면을 취할 때의 짜증과 안타까움을 날려버립니다. 그저 선수들 옆에서 선수들을 돕고 있을 뿐인데 제 자신이 배워가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이순신반은 스스로 배워나가는 반입니다. 선수들과 코치 모두 쉽지 않은 길이지만 묵묵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왜 ‘이순신반’ 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을까? 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순신반이 거북선 학교과실을 쓸 때 지어졌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순신반의 색깔을 찾아보면 그 이름에 맞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투에 앞서 밤을 새가며 준비하였습니다. 또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묵묵히 준비하고, 비록 여건이나 환경이 어려울지라도 끝내 이겨낼 저희 선수들과 똑 닮은 이순신반!‘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반은 앞으로 나아갑니다.-이대로 코치 올림-<br /><br /><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