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605 0 19-05-14 10:06
레드칼럼 – 담임으로 산다는 것
2010년 내 나이 36살
설레는 마음으로 긴장된 마음으로 서울에서 삶의 터전을 금산으로 옮겨오던 해
나는 나와 스무살이 차이나는 16살 아이들 11명의 담임이 되었습니다.
8년간의 학원생활로 나는 아이들과 잘 지내고 아이들을 잘 안내할 수 있다고 자만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간 나는 36년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과 감정들을
만나고 그것들을 내 손에 받아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뼈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허둥지둥하는 만큼 우리반 아이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8년간의 교육경험이 기숙형 대안학교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자만심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그로부터 ‘나는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를 키워준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대학을 가고 군대도 가고
또 각자의 길에서 씩씩하게 자기답게 살고 있습니다. 그저 함께 아파해주고
함께 방황했던 담임을 가끔이라도 기억해주고 연락이 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레드생활 10년차에 나는 세 번째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레드 첫해 때와 같은 3학년 13명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이젠 이 아이들과 서른 살의 나이차이가 납니다.
10년이 흘렀다고 뭐 그리 대단한 내공이 쌓여 아이들의 흔들리는 마음,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싹싹 해결해주는 해결사가 되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달라진 것은 예민히 아이들을 바라보며 믿고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아이들을 나의 잣대로 재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단 들어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모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도움을 청한다는 것입니다.
그 10년 사이 내게 생긴 건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 사이 내 마음에 단단히 들어선 것은 바로 아이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결국엔 스스로 성장의 길을 찾고
해결해 갈 힘이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최근 몇 년 간 우리학교에 들어온 신입코치들이 담임을 맡으며 조바심을 내고 어려움을 겪고
눈물로 호소하는 모습들을 보며 내 첫 담임 시절이 생각나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나와 그들을 보면서 담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 담임은 무엇을 공부해야할까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담임은 겸손함으로 아이들을 만났으면 합니다.
나의 교육경험이 얼마이든, 레드에서 얼마의 시간을 지냈든 지금 만나는 아이들은
처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는 아직 모른다’로 시작하면 더 잘 듣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담임은 기다림으로 아이들을 만났으면 합니다. 담임은 해결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담임은 아이들에게 늘 안테나를 세우고 아이들 눈빛과 행동, 말에 예민해야 하겠지만
그들이 갈등상황을 스스로 조율하고 해결해갈 수 있도록 눈에 띄지 않는 조력을 하며 기다렸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갈 때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하고 배우게 된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회를 담임의 조급증이 빼앗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신비롭고 힘이 있습니다.
우리 담임들이 이런 믿음을 갖고 간혹 이 믿음에 실망을 느끼더라도 또 믿고 그들을 기다리고 조력한다면
아이들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갈등과 협력을 스스로 조율하고 이루어나가는 그런
건강한 사람으로 커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아직 나도 잘 하지 못합니다.
그저 지난 10년간의 레드생활이 나에게 이런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해준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나를 키워준 내가 만난 모든 레드선수들에게 감사합니다.
상담코치 인농 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