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302 0 22-03-20 13:50
”그런 일을 할 시간은 앞으로 있을 거야. 자기가 대학에 가고 나서도 얼마든지 말이야. 그런 다음에 우리도 결혼할 수도 있고. 좋은 곳에 얼마든지 갈 수 있어. 자긴 그저……”
J.D.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은 벌써 네 번째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홀든은 시험을 볼 때마다 번번히 낙제를 받습니다. 홀든의 눈에 학교의 시험지란 자유로운 생각을 막는 인위적인 도구일 뿐입니다. 이번에도 퇴학이라니, 부모님께 면목이 없어진 홀든은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만난 여자친구 샐리에게 위와 같은 말을 듣습니다. 자유로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학교, 홀든이 꿈꾸는 것은 과연 이상이었을까요?
“ 아니. 그렇지 않아. 갈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는 건 아니라구. 모든 게 변할 테니까. 아무 데도 가지 못할거라고 말했어. 내가 대학을 가고 난 후에는 말이야 내 말 똑똑히 들어봐. 그땐 모든 게 달라질 거야. … 난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택시나 매디슨 가의 버스를 타고 출근하겠지. 신문을 읽거나 온종일 브리지나 하겠지.”
홀든이 대답합니다. 그때는 모든 게 달라져 있을거라고요. 읽으며 저 역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면 막상 그때에 가서는 분명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겁니다.
2022년 올해로 저는 레드스쿨에서 세 번째 고3(레드 6학년) 담임이 되었습니다. 레드스쿨이라는 대안학교에 입사하고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던 물음이 “왜 꼭 대학에 가야하는가?”였습니다. 대학을 준비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지금’을 놓치게 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홀든도 그렇게 생각하나 봅니다. 지금이 아닌 ‘그땐’ 모든 것이 달라져 있을거라고요.
오래 물었습니다. 대학을 잘 다니고 있는 졸업생에게도 묻고, 새로운 뜻이 생겨 대학을 그만둔 친구들에게도 물었습니다. 지금 어떤지 선택이 만족스러운지 말입니다.
어쩌다보니 호밀밭의 파수꾼을 여러차례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문득 이전에는 지나쳤던 문장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방랑을 끝내고 다시 학교에 들어가겠다는 홀든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 실제로 해보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될지 알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야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에는 다시 학교를 뛰쳐 나올 수 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묻고 고민했던 저에게는 어느날 이 문장이 새로운 의미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해보기 전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이제 저는 대학에 왜 가야 하는가라고 더이상 묻지 않습니다. 실제로 가보기 전에는 대학이 중요한지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한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3들의 담임으로서 중요한 것은 ‘지금 하는 일에 열심히 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알 수 없는 미래로 고민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도록 마음을 모아주는 일입니다.
분명 그 일은 절대로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일이 아닐겁니다. 그러나 언제나 ‘지금’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과 그 속에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꼭 대학을 가야하느냐 보다 어디를 가건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답을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살아보니 어떠신가요? 그땐 대학이 전부일 것 같았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지 않던가요? 오늘도 우리 아이들이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길에 최선을 다하길 기도해 봅니다.
무엇을 하건 현재를 버리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런 사람만이 꿈도 꿀 수 있습니다.
2022/03/20 레드스쿨 국어과교사 한성종 (코치 소낙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