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263 0 22-06-13 08:49
처음 레드스쿨에 왔을 때 비담임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침마다 담임 선생님들께서 각 반에 아침조율을 들어가실 때 저는 교무실 소독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첫 직장생활인데다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퇴근 자체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숙제였습니다. 그래서 과목 업무에 담임으로서 아이들을 만나기엔 버거울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심 부러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년끼리 만리여행을 갈 때, 아이들이 담임선생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어떻게 학급을 꾸며나갈까 상상도 해봤고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을 코칭하시는 모습들을 보며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2021년에 드디어 첫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운전도 어느 정도 늘었습니다. 이제 아이들만 잘 만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초심자의 행운을 믿고 담임반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이니까, 잘 할 수 있다는 마음만 가지면 어느 일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소설에 보면,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가혹한 시험’이 저에게는 없을 줄 알았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이런저런 생각들과 희망을 가지고 만난 아이들은 생각대로 밝고 명랑했으며, 많은 에너지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제가 생각했던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10대 아이들이 겪는 흔한 갈등 상황조차 저에게는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을 빚는 아이들 사이를 중재해야 했고, 저와 생기는 갈등 또한 해결해 나가야 했습니다. 학업도 게을리 하지 않도록 챙겨주어야 했습니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말도 통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처음이라고 허둥대면 아이들은 더 허둥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담임을 맡은 지 두 달 만에, 제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습니다. 주변 선생님들께서 걱정 어린 말씀들을 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꿈과 희망을 가지고 시작한 담임 생활인데.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혼자만 담임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선생님들도 다 해보셨던 일인데.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 같아 혼자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습니다. 다들 하는 일인데 왜 나는 잘 못하는 것 같지? 학생 때나 했던 고민인 것 같은데 직장까지 와서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변 선생님들께 조언도 구하고, 책도 여러 권 읽어보았습니다. 나름 독서 모임도 시작해서 책도 읽으며 교육과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달랐던 아이들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1년 내내 아이들 생각만 하며 바쁘게 학기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1년이 지나 첫 해 담임을 끝냈을 때, 빈 교실을 보며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힘들기만 한 것 같았는데 하나하나 돌아보니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스승의 날에 제게 써주었던 주옥같은 편지들, 코로나로 인해 멀리 나가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2박 3일간 즐겁게 보냈던 만리여행, 아이들과 아침에 웃으며 나누었던 대화들, 서로를 축하해주던 생일 파티, 그리고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떠올랐습니다. 이 아이들의 담임이었기에 할 수 있던 일들이고, 이 아이들과 더 많이 만났기에 가질 수 있었던 감정들이었습니다.
일 년 동안 제가 아이들에게 해주기만 한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제게 해준 일이 더 많았습니다. 부쩍 자란 아이들을 보며 성장기라 아이들만 많이 자란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저도 같이 자랐습니다.
내가 담임이 처음인 것처럼, 아이들도 저를 만나는 일은 처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 년을 보내고 나니 왜 더 잘해주지 못했지, 딱 일 년만 더 하면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첫 담임으로 한 해를 지내면서 생각대로 되지 않아 눈물을 삼키던 날도 있었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보내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알았고,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도 알았습니다.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을 진심으로 만난다면, 아이들은 나도 모르게 성장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면서 얻었던 많은 것들을 돌아보니 교사에게, 특히 대안학교 교사에게 담임이란 정말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학교와는 다르게 아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출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사범대학을 졸업했지만 정작 학교에서 많이 배워가는 건 저였습니다.
저는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계속해서 담임생활을 즐겁게 하고 계신 이유들을요.
2022년이 되어 새로운 학년을 맡게 되었고, 작년에 만났던 아이들과는 다른 아이들이지만 해보고 싶은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처음 제 생각과는 다르게 벌어지는 일들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 일들을 하나하나 잘 만나보려 합니다. 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게 되겠지요. 처음 만났던 아이들이 준 것들 위에 새로운 아이들과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그것들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제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사에게 담임이란 내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를 아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봅니다.
감사합니다.
2022/04/22
레드스쿨 과학과 교사 최소민 (한봄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