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
343 0 16-10-28 18:38
“코치님 가지마세요.” “왜?” “조금 더 있다 가세요” “나도 가정을 지켜야 하는데..?” “그런데 뭔일이야?” “저 공부가 잘 안돼요.” “그래? 무슨 공부가 잘 안 되는데..” 어제 야간수업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가려는 나를 한 어린 여선수가 붙잡습니다. 뭔가를 갈망하는 눈빛과 공부하다가 지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단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선수의 마음이 읽혀지니 고마움과 안스러움이 올라옵니다. 부모 품을 떠나 무가탈하겠다고 안해본 공부를 하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24시간 언니 오빠 동생들과 함께하려니 자기만의 공간도 여유도 쉬이 가질 수 없으니 그것 또한 가벼운 일이 아닐 거야.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는 인생을 온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 어린 선수들을 매일 매일 바라보는 마음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집에 가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3명이나 있건만 자식보다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자식보다 더 신경을 쓰는 나 자신을 볼 때 묘한 죄책감과 걱정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나 이래도 되는건가?‘ 하면서도 이내 선수들 생각으로 꽉 차 오릅니다. 잘 코치하고 싶은데 선수들은 생각처럼 잘 안 따라옵니다. 잘 들어주고 싶은데 마음에 있는 얘기를 눈치보며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한없이 자식처럼 사랑을 나누고 싶은데 몇 명은 잘 통하는데 몇 명은 영 마음을 쉬이 열지 않습니다. 받아주기는커녕 오해하는 선수들을 만날 때는 밤잠을 설치며 그 아이 얼굴만 계속 머릿속에 어른 거립니다. 제 마음도 덩달아 외롭고 미안하고 답답함이 올라옵니다. 이런 나처럼 우리 레드 코치들도 비슷한 앓이를 하고 있는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레드 코치들은 어느덧 선수들에 중독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선수들은 선수이면서도 삶으로 만난 자식이 되었습니다. 꿈을 꾸어도 선수들 꿈을 회식을 해도 선수들 얘기를 어디 가서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선수들이 코치들의 머리속을 꽉 채웁니다. 중독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벗어나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힘들어 지쳐서 어느 멀리 도망가고파도 슬퍼서 눈물나와 조용히 있고 싶어도 화가 나서 나를 잃어버릴 정도인데도 선수들을 떠올리면 평화가 용서와 미안함과 사랑이 가슴을 저며옵니다. 나를 잊고 선수들로 채워져가는 모습 속에 나의 아픔과 연약함과 일그러진 모습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합니다. 선수들의 눈빛, 태도, 웃음, 울음, 움직임 하나 하나가 예술적입니다. 아~ 이런 내가 밉습니다. 중독을 이기지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그 향기가 너무 진하고 강합니다.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고 놓지 못하듯 중독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는 아픔도 있습니다. 레드 코치들은 어찌보면 치사할 정도로 자기 얘기를 안합니다. 지나치게 거의 모든 이야기가 선수들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이 중독을 끊고 싶을 때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 모르겠습니다. 행복한 중독이려니 믿으며 선수를 보며 제 입가에 걸리는 미소를 소중히 하렵니다. 이렇게 중독되어가는 내가 이런 중독자들이 모여 사는 레드가 지금은 좋습니다... 여기가 좋습니다...^^ 오솔길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