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145 0 23-06-07 11:13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그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젊은 화가는 위와 같은 비평가의 평을 듣고 고뇌에 빠지지요.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 ... "실례지만, 이 그림에 깊이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처럼 주변에 늘 이런 물음을 던질 정도입니다. 한 평론가의 말을 통해 오히려 스스로 깊이에의 강요에 빠지게 된거지요.
그녀는 결국 자신의 모든 그림을 찢은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젊은 화가는 "그래 맞아, 나는 깊이가 없어"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했습니다. 평론가의 말 보다 더 본인에게 치명적인 순간입니다. 다시 읽어도 안타깝네요. 조금 더 그 말을 '쿨'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까요?
인식이란 무척 어렵고도 무서운 단어입니다. 전 무척 잘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 코치실에 학부모님께서 선물로 주신 간식이 있었습니다. 하루 지나 간식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저는 '누가 다 먹었지?'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모든 코치님들께서 저를 바라보시더군요. 저는 다급히 "어! 나 아니야 딱 한개 먹었다고!"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전 다른 코치님들의 표정에서 저의 진실된 울부짖음은 들리지 않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니라고 분명 이야기 했는데 왜 믿지를 않는 것일까요.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건 저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이지요. 다 제가 만들었지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인식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사실과 다르지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실제로 내가 어떤 사람이냐와 차이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간식을 먹지 않았다고 해도 간식을 제가 먹은 것이 되는 것처럼요. 내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라고 '인식'이 되는 순간, 사실과는 또 다른 종류의 사실이 되고 말지요. 때론 사실(진실)보다 "걔는 그럴만 해"라는 인식이 더욱 사실처럼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코치로 근무를 하면서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매일 깨닫습니다. 순간순간 아이들이 하는 선택들은 주변과 자신 스스로에게 매일 어떠한 인식을 만들어 나갑니다. 철수는 정직한 선수야, 영희는 불성실한 선수야. 스스로에게도 '나는 성장하고 있다', '나는 왜 하는 일마다 안될까'와 같이요. 소설에서도 평론가의 말보다 '나는 깊이가 없어'라는 인식이 결국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 나간 것 아닐까요? 본인을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은 기다려주기만 한다면 언제든 성장을 하고야 맙니다.
다시 소설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여류 화가의 그림은 정말로 '깊이'가 없었을까요? 저는 알 수 없지요. 깊이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을겁니다. 그저 평론가가 하는 일이란 자신의 견해를 진솔하게 글로 이야기 하는 일일 뿐이지요. 평론가의 견해가 모두 진리이고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러나 교사와 학교의 역할(또는 부모의 역할)은 평론가와 다릅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교사의 견해에 따라 최대한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물론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걸 바탕으로 최대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인식과 언어를 덧붙여야 합니다. 교육이란 결국 성장을 시키기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사가 바라보는 균형있는 인식을 외면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직한 자기 판단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겠지요. 맛있는 음식에 식재료가 정직하고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듯이요. 하지만 모두가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재료들을 어떤 레시피로 이끌어 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시 이야기를 해봅니다. 인식은 또 다른 내가 만들어 낸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걸 부정하기보단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어른들이 모두 힘을 모아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식이 쌓이면 무섭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천천히 수정이 되어가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게임 중독 아이 보다는 게임만 스스로 조절한다면 무엇이든 해낼 아이로 바라보는 것. 순간 순간 어렵겠지만 모두(교사, 학부모) 긍정성 있는 방향으로 선수들을 바라보는 멋진 레드스쿨 공동체가 되어가길 소망합니다.
레드스쿨 소낙비 코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