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
376 0 16-10-28 21:24
옛날 어느 양반집 가문에 늦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늘그막에 귀하게 얻은 아들이기에 아버지는 금이야 옥이야 키웠지요. 하지만 아들은 학문에는 뜻이 없고 온통 장거리 구경 여염집을 드나드는 데에만 신경을 썼지요. 어르기도하고 달래기도하고 나라에서 뛰어난 석학을 글공부 선생으로 붙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거의 포기하여 한숨이 깊어가던 밤, 아들의 방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버지는 놀아 아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에헴... 문재야 애비 잠시 들어가도 되겠느냐?” “네 아버님 들어오세요” “그리 어르고 달래도 하지 않던 공부를 갑자기 하게 된 연유가 무엇이냐?” “아버님, 지난 달 초 하루날에 장거리를 도는데 마침 꽃신을 사러 나온 이 참판댁어른의 금지옥엽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걸어보는데 자신은 글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지 않습니까?” 지난 9월 3째주 제가 담임을 맡고 있는 4학년 선수들과 305년 된 윤증 고택에 다녀왔습니다. 피곤한 밤이 무르익을 무렵 인솔을 해 주신 삼두매코치님께서 아이들에게 한명 한명 물음을 던지십니다. “레드에 왜왔니?” “중흥시조가 되어서 뭐 할 건데?” 물음을 받은 아이들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자신이 왜 레드에 왔는지 이 고택에서 자신들은 무엇을 얻어가야 할지. 다음날 피곤하여 터덜거리던 아이들의 걸음이 씩씩하게 바뀌고 종손 어르신과의 대화에서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질문을 던집니다. 주말을 앗아간 피곤한 여행에서, 성인이 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생각이 바뀝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처마가 달라 보이고 잘 때도 느끼지 못했던 한옥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305년 가문을 지켜왔던 그 정신들이 알알이 마음에 박히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과 잔소리로 아이들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외쳐도 결국 아이들이 하고자 하지 않으면 공부는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올바르게 살아라’ 라고 말을 해도 결국 올바른 삶으로 선택해 가는 것은 아이들 자신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움직이는 선택은 결국 자기 내부에서 나오게 됩니다. 저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동기를 부여해주는 학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학교는 피곤하고 잔소리가 많은 학교이지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학교란 아이들이 자신의 속에서 동기를 꺼낼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솔로타임, 롤모델만나기, 꿈발표회, 성인식, 종택여행 등 레드에서 4학년이 1년 동안 받는 삶의 동기를 꺼낼 기회들입니다. 바뀐 아이들의 눈빛에서 느낍니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동기를 실컷 꺼낼 기회가 있는 레드는 좋은 학교라고요. 레드코치 소낙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