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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칼럼

레드 칼럼 105 다섯아들 모두 과거급제. 당대 최고의 명문가 반열에 오른다

오작교

447 0 16-10-28 23:26

레드스쿨이 설립된 지가 5년이 되었습니다. 레드스쿨은 아침햇살 선생님께서 하비람 문중 자녀들을 집안 대표선수로서 무지와 가난 허약으로부터 탈출하게 하여 가문의 중흥 시조와 글로벌리더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대안학교입니다.  이 설립목적을 위해 레드는 선수들에게 집안의 대표선수이자 중흥 시조가 될 수 있도록 코칭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수들에게 중흥시조가 되기위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모범이 된 중흥시조를 찾아가서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레드1학년에 입학하면 2박 3일 동안 안동 종택 답사를 하고, 성인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명재 고택을 탐방하여 중흥시조에 더 한발짝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은 그중에서 안동 의성김씨대종택의 중흥시조인 청계 김진을 소개할 까 합니다.청계 김진  자식 교육 위해 벼슬길 접은 선비, 죽어서 판서가 되다.  다섯 아들 모두 과거급제.. 당대 최고이 명문가 반열에 오르다.  일찍이 아내와 사별... 주위 의지 않고 홀로 양육  가난한 친척 정성껏 돕고... 노년에 부지런히 농삿일  “너희들이 먼 길을 왔다 갔는데 아무 탈 없이 있느냐.  나는 별 일 없으니 걱정 말아라. 너희들은 시월 전에 평해의 절로 들어가 겨울 석달 동안 사서 삼경을 공부하고 오너라. 너의 형은 게으름을 스스로 채찍할 뜻이 없으니, 내 머리가 다 희게 되었다. 너희들 또한 편지를 보내어, 내가 너의 형에게 마음 쓰는 뜻을 보이도록 하여라,”  청계 김진(1500~1580)이 아들 수일, 명일, 성일, 복일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자식 교육에 대한 청계의 각별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영달을 포기하고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바쳤던 청계는 남다른 교육 철학으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다섯 형제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낸, 자식 교육에 성공한 조선시대 대표적 인물이다.  청계는 다섯 아들 모두를 과거(소과)에 급제시켜 가문을 당대 최고의 명문가 반열에 오르게 했다. 약봉 김극일, 귀봉 김수일, 운암 김명일, 학봉 김성일, 남악 김복일이다. 조선시대에 다섯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는 일은 매우 드문 경우이며, 경국대전에 “아들 다섯이 과거에 합격한 부모에게는 임금에게 보고해 해마다 쌀을 보내주고, 부모가 죽으면 벼슬을 추종하고 제사를 지내준다.”라는 조항이 있을 정도로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  5형제가 과거에 급제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모두가 학문이 뛰어나고 강직한 선비로서 각각 일가를  이루었단는 점은 특히 청계가 어떻게 자식을 교육시켰는지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한다.  청계는 아내가 어린 자녀들을 남겨두고 일찍 사망한 뒤, 자녀 양육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했다.  그가 자녀 양육과 교육에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학봉이 지은 청계 행장에 잘 나타나 있다.  큰 형(약봉)이 과거에 급제한 뒤 바로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슬하에 아이들이 여덟인데 대부분 나이가 어리거나 강보에 싸인 아이였다. 부군께서 어루만져 기르심에 있어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밤에는 좌우로 안아 주시는데 아이들의 어머니 젓 달라는 소리가 매우 애처러워 부군께서 몸소 젖을 먹이시니, 비록 단 젖은 않았으나 젖을 빨면서 울음을 그치곤 했다. 부군에서 이 말씀을 하실 때면 주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처럼 청계는 엄마 역할까지 대신하면서 자식들을 헌신적으로 길러냈다. 그리고 사람들이 첩에게 미혹되어 적자(嫡子)를 해치는 것을 개탄스럽게 여긴 그는 반드시 온순한 성격을 가진 사들을 찾아 첩으로 삼았고, 매일 정성을 다해 자신이 낳은 것처럼 사랑하고 보살펴야 하는 도리를 반복해 가르쳤다.  만약 어기거나 거스름이 있으면 엄하게 꾸짖어 뉘우치고 고치게 한 다음에야 그만두었다.  “너희들이 소인이 되어 산다면 죽었다고 보겠다.”  청계는 자식 교육을 위해 자신의 입신양명도 포기했다. 이것과 관련된 아주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청계가 젊은 시절 서울 교외의 한 암자에서 대과를 준비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한 관상가를 만났는데  “당신이 살아서 벼슬을 하면 참판에 이를 것이나, 벼슬 생각을 버리고 자식 교육에 힘쓰면 죽어서 판서에 오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청계는 관상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대과(문과) 시험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녀 교육에 전념했다.  그는 군자와 소인을 엄격하게 구별하고, 군자가 될 것을 주문했다. 자식들에게 항상 강조하기를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마땅히 정성을 다해 믿음을 얻은 다음이라야 간언하더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신하는 차라리 부석진 옥의 조각이 될지언정 온전한 기와가 되어서는 안된다. 너희들이 군자가 되어 죽는다면 나는 오히려 산 것으로 보고, 소인이 되어 산다면 오히려 죽었다고 보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정도를 지키다 죽을지언정 지조를 굽히지 말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리고 청계는 다섯 아들 모두 가학으로 기초를 닦게 한 후 퇴계 이황에게 보내 제대로 된 학문을 배우게 하였다.  청계는 또한 지나친 물질적 풍요와 엘리트 지상주의를 경계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재산은 300석 이상 갖지 말고, 벼슬은 당상관 이상 오르지 말 것”을 주문하여 유훈으로도 남겼다. 부귀영화를 탐하지 말고 분수를 지켜 청빈한 삶을 살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이처럼  자식의 입신 양명을 버리고 자식들을 모두 과거에 합격시켜 당대 최고의 명문가 가문으로 만든 청계 김진. 그 모습에서 우리 레드는 본받고  중흥 시조의 꿈을 이룹니다.  삼두매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