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교
432 0 16-10-29 00:06
뼈가 굳어가는 병에 걸린 그녀는 무허가 지압집 3층 계단을 오르며 자꾸만 나를 쳐다봤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신발을 신고 한 칸씩 계단을 오르는 그녀는 어디 가서 밥 먹고 오라고 숟가락을 입에 대는 시늉을 했다 『인디언의 여자』 「밥」 정용주(2007) --------------------------------------- 아이들은 늘 다투게 마련입니다. 담임을 하다보면 가장 어려운 일중에 하나가 아이들의 갈등을 풀어 나가는 일입니다. 양쪽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서로 억울한 만한 일들이 있었지요. 그러면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날부터 머리를 싸매기 시작합니다. 평소 찾지도 않던 하나님도 찾아봅니다. “지혜를 주세요” 한명씩 붙잡아두고 상담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해예요’ ‘오해를 풀고 싶어요’ 그럴 때 저는 ‘상대의 마음을 아무런 생각의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받을 수 없을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지요. “상대의 잘못 말고 너의 잘못을 먼저 말해 보겠니?” “이해한다면서 억울했던 너의 이야기를 다 내뱉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벼른 것 아닐까?” 편견 없이 세상을 볼 때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의 고정관념이라는 여과장치가 셀수록 상대의 마음을 느끼기란 더욱 어려워지지요. 「밥」이라는 시를 보고 마음이 짜르르해 졌습니다. 안쓰러운 그녀의 상황에 먹먹하다가 그녀가 하는 행동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는 나를 바라봅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지요. ‘내가 온전히 그녀라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신발’을 신은 것은 화자의 관점입니다. 무허가 지압집 3층이라는 배경이 한층 더 ‘그녀’에게 안쓰러운 시선을 던지게 하지만 실제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시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온전히 화자와 나의 생각을 빼고 본 그녀는 단지 나를 걱정하는 ‘밥’에 대한 제스쳐를 취했다는 ‘일’ 뿐이지요. 그녀가 주는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받기 전 벌써 모든 상황을 판단해 버린 사람들의 시선이 ‘안쓰러움’을 읽고 ‘위로’를 읽어 갑니다. 사랑의 마음을 나누는 이웃 그리고 쉽게 그 매개체가 되어주는 ‘밥’ 가끔 다투는 아이들이 가장 쉽게 화해를 하는 장소는 ‘들소리홀’ 레드의 식당입니다. 다투다가도 밥을 먹을 때는 그래도 서로를 챙겨갑니다. 그리고 반찬 이야기와 수다를 떨다보면 조금씩 녹아내립니다. 따로 제가 할 것은 매우 적습니다. 그저 아이들에게 다투었을 때 서로의 오해를 풀기 위한 100마디의 말보다 ‘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 키우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핸드폰을 뒤적이다가 그리운 이름 하나를 찾아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라고 말을 하는 사랑을 만나게 하고 싶을 뿐입니다. 여기는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달리는 한 식구(食口) 레드스쿨입니다. 비록 오늘 점심 반찬이 생선일지라도 아이들이 편견 없이 생선을 바라보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레드스쿨 중농 소낙비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