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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칼럼

레드 칼럼 138 ‘주말의 명화’키드의 생애

오작교

445 0 16-10-28 23:52

<헐리웃 키드의 생애> 란 소설이 있었다. 영화로 되기도 했는데 아마 최민수가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지독히 영화를 사랑했던 한 남자 이야기였는데 주인공을 키운 것은 팔 할이 중고등 때 본 헐리우드영화였다. 그리고 난 <주말의 명화>키드였다. 날 키운 것은 주말의 명화였고. 그 시절 난 눈치 밥이 아니라 눈치 영화를 봐야 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이 안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버지 주무시는 사이에서 영화의 감동에 우는 것도 눈치를 봐야했고 키스신에서 나는 소리는 들키지 않아야 했다. 참 조마조마했고 지금 생각하니 참 잔인했다. ㅋㅋ 열정 있던 시절이었다. 주말 밤이면 주말의 명화를 위해 난 내 영혼을 팔았으니 말이다. “너 봤니 봤어?” “제임스 딘 그 장면 죽이지?” 주말의 명화를 본 다음 날이면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빈 교실에서 우리 몇몇 만의 수업이 시작된다.  의자를 돌려 불편하게 앉아 해질 녘 학교에서 쫓겨날 때까지 말이다. 어느 날 <엘머 켄트리>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약혼을 앞둔 여주인공 죽음 앞에  모두 의견이 분분했는데  난 그저 운명의 아이러니 앞에 한없이 슬퍼만 했는데 다른 친구의 영화 해석 앞에 말그대로 난 새로운 세계를 시작하고 말았다. 보이는 영화가 다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영화 속 이야기가 더 깊이 있더란 말이다.  <피서지에서 생긴 일><초원의 빛>지금도 눈에 선한 달달한 청춘 영화부터  늦은밤 혼자 보았던 사회성 짙은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크워크>란  영화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훗날 <허공에의 질주>가 시드니 루멧 작품인걸 알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스타일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어디 그것뿐일까? 분명 흑백 티브이였겠지만 기억 속의 그 영화들은 칼라로 남아있는 것이  불가사의 할 뿐이다. 그리고 난 주말의 명화보다 주말 명화 이야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이야기 하면서 보이는 영화가 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네마코프의 세계에 눈을 뜨고 말았다. 영어 수학이 채울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였다. 지난주 인문학부 아이들과 <마미>란 영화를 보았고 지난 학기 수업 시간에는 우정이란 주제로 <파인딩 포레스터><굳 윌 헌팅> 등등의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은 영화 속 이야기를 나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찾는 자와 찾아가는 자란 말이지” 난 칠판 가득 주인공 이름을 써가며 침을 튀었다. <마미>를 본 다음 날은 아주 우연히 점심시간에 모여 앉아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얘들아 난 이 영화를 보고 어떤 한 세계가 무너진 기분이 들었어.”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코치님” 그리고 우리는 이 영화가 깨뜨린 금기에 대해서 감독에 대해서 침을 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옛날  <디어 헌터> <대부>의 의미를 들려주시던 나의 선생님 흉내를 내면서... 난 흥분이 되었다 내가 3-40여년 전 방과후 해질녘 2-7반 우리 교실로 돌아간 것이다. 우리는 불편한 영화만 보기로 했다. 우리에게 좋은 영화는 불편한 영화였다.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적당한 삶의 위로가 아닌 삶을, 세상을 바로 보게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경험하자고 약속했다. 영혼을 팔아가며 주말의 명화를 보던 소녀가 자라 아이들과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한다. 이제 난 한빛이에게 수진이와 은수에게 영화 보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이렇게 영화를 가운데 두고 서로 주고받는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다 그 옛날 주말의 명화 키드는 자라 코치가 되어 선수들과 영화를 두고 세상을,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한다. 이럴 때 난 성장한다.  이럴 때 내 기운은 퍼져나가 무늬가 된다. 아! 그 옛날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듣고 싶다. 레드스쿨 책읽기 참외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