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나는 나를 혁명합니다.

  • 홈
  • 커뮤니티
  • 레드나눔방
  • 레드칼럼

레드칼럼

레드칼럼 192 - ‘하얗다’라는 건, 없는 게 아니라 무궁무진 한 것이다

다온

520 0 17-01-23 04:57

레드스쿨 안에서 선수들과 같이 숨 쉬고 서로의 눈을 쳐다본 지 어느새 3개월이 지났다. 3개월 동안 우리 선수들과 함께 있으면서 나 역시 ‘레드’화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내 행동과 사고방식도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레드에 들어오기 전의 내 모습과 레드에 와서 적응하고 있는 내 모습이 조용히 싸우고 있었다. 완전히 물들지 않은 모습에서 조금씩 불완전함이 새어 나오고 있을 때쯤 화이트 스쿨이 내게 다가왔다. 화이트스쿨이란 쉽게 말하자면 기존운영체제를 밀고 새 운영체제를 까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바꾸어 말하면 포맷하여 다 밀어버리고 새로운 운영체제 ROS(Red Operating System) 운영체제를 까는 것이다. 이 바탕 위에 블루스쿨을 통해 무가탈, 평생학습인, 중흥시조로의 구체적 성장을 위한 레드의 어플을 깔아주는 것이다. 올 1학기에 들어올 신입생들에게 레드의 생활태도를 수련하는 시간이지만, 이런 나에게도 비움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두근거림을 안고 15기 화이트스쿨에 들어왔다.  맨 처음 레드에 도착한 예비 레드 선수들의 모습은 마치 내가 레드에 맨 처음 들어올 때와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긴장감과 동시에 아름다운 학교의 모습에 감탄하던 선수들의 표정을 보면서 3개월 전 나를 보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였다. 아침햇살 할아버지께서 다람쥐, 두더지, 쥐 이야기와 ROS 이야기를 시작으로 화이트스쿨, 지옥의 문이 열렸다. 먼저 가져온 옷들을 정리정돈을 배우는 시간에 나도 선수들과 같이 내 옷을 챙겨서 수업을 들었다. 평상시에 옷을 갤 때는 내 편한 방식대로 해왔었는데, 선수들과 함께 하나 둘씩 따라해 보니 내 흐트러진 마음도 정리되는 것 같고, 예쁘게 개어진 옷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이어진 바른 인사법을 배우는 시간에는 선수들이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사를 해오며 지내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허리를 제대로 숙이지 않거나 목소리가 작은 선수들을 보면서 레드 선수들이 내게 해오던 인사 하나도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날에 이어진 수련들도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전심전력으로 그 일에 몰두하기’ 라는 테마 아래 멸치와 마늘 작업, 그리고 성자되기였다. 평상시 집에서는 어머니들께서 주로 하시던 멸치와 마늘 작업을 선수들이 모여서 직접 전심전력으로 해보면서 아마 어머님들의 고생을 조금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멸치의 비린내와 마늘의 매운 향은 물론이거니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두 함께 두어시간을 전심전력을 다해 몰두하여 많은 작업량을 마쳤을 때 느껴지는 기쁨과 뿌듯함, 그리고 감사함이 선수들에게 오롯이 전달되었을 때, 나 역시 집에서 한번이라도 어머님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이 작업이 서투른 모습이 부끄럽기만 하였다. 성자되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레드에 와서 성자되기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화이트스쿨에 온 예비 레드 선수들에게는 학교를 내 것처럼 아낄 수 있는 주인의식과 몰두했을 때 느껴지는 성자됨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동시에 코치인 나에게도 고마운 시간이었다. 성자되기 시간이 되면 선수들에게 요구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칭찬해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같이 해보면서 나 역시 레드스쿨의 구성원이라는 자부심과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경험이, 그리고 레드 선수들이 얼마나 잘 훈련된 선수들인지 알 수 있었다. 화이트스쿨의 밤 역시 매우 의미 있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연필을 깎아보고 젓가락질로 대결을 하는 시간은 요즘 청소년들에게 가볍게 보이거나 무의미한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학생일 때 나 역시 연필을 직접 칼로 깎기 보다는 연필깎이 기계를 사용하여 연필을 깎았다. 지금은 샤프라는 도구가 나와 연필 자체가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연필을 직접 깎는 것은, 공부하기에 앞서 마음가짐을 살피고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다해야 이뤄낼 수 있는 경지이자 결과물인지를 알려줄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깎은 연필이 선수들보다 못생긴 걸 보면서, 나 역시 공부라는 대단한 존재 앞에서 얼마나 거만하고 부족했는지 느끼면서 편하게만 자라온 나, 그리고 지금의 청소년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젓가락 대결은 말 그대로 자신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콩이 담긴 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콩을 옮기는 간단한 작업이지만, 많은 선수들이 콩 한 개를 옮기는 것도 버거워하고 힘들어했다. 앞에 옆에 선수들은 숙련된 젓가락으로 콩을 옮길 때 젓가락질을 제대로 배우거나 해보지 못한 선수가 콩 한 개도 못 옮기면서 느끼는 부끄러움과 무력함은 단순히 젓가락질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기본이, 밑거름이, 가족과 그 교육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보여주기에 선수들은 결과 앞에서 이겼다고 좋아하면서도 많은 생각과 느낌을 얻었을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젓가락질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때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싫어서 배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젓가락질 하나가 나와 내 부모님과 내 교육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지표이기에 참 잘 배웠다고 생각한다.3분 스토리텔링 시간 또한 화이트스쿨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평상시 레드 선수들의 3분 스토리 시간은 어떠한 감동보다는 정보전달이나 자신의 말하기를 연습하는 장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그런데 아직 빨갛게 물들지 않은 화이트스쿨 선수들의 3분 스토리는 나를 비롯한 코치님들과 다른 선수들의 가슴을 깊게 울렸다. 단순히 레드에 오기 전에 무엇을 했고, 어떻게 자라왔다 라는 이야기부터, 연애이야기, 방황했던 이야기 등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일 멋진 이야기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친구들에게 말하고, 그 점을 레드에 와서 고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말할 때는 정말 선수 하나가 아니라 매우 큰 사람으로 느껴졌다. 레드라는 종착역에 도착해있는 선수들은 레드를 넘어 자신의 꿈과 인생을 그려가고 있지만, 화이트스쿨의 선수들은 레드라는 그 문 앞에서도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느끼고 그 문이라도 넘어보겠다는 의지, 그래서 레드에서 자신이 변하는 모습만을 염원하는 그 목소리가 정말 신선하고 깊게 내 가슴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나도 레드에서 내 자신이 어떻게 커가고 자라나고 뻗어갈 것인지 다시금 새기고 다질 수 있었다.4번째 날, 화이트스쿨의 가장 높은 산이자, 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하이라이트, 걷기수련은 고된 만큼 달콤했다. 가끔씩 차가 다닐 뿐 조용한 길을, 아무 말도 없이 내 몸에만 오롯이 집중하면서 걷는 시간은 새로운 느낌이었다. 몸이 힘든 것처럼 느껴지지만 머리는 점점 비워지고, 몸의 감각이 무뎌질수록 내 심장소리와 숨소리는 또렷이 들렸다. 선수들은 20km 가까운 거리를 한명의 낙오자 없이 꾸준히 걸었고, 선수들의 안전을 챙기면서도 나 역시 선수들과 함께 걷기수련을 하면서 고통 끝의 달콤함을 느꼈다. 수련 후 맛있는 육개장과 개운한 엣지욕은 화이트스쿨이 이렇게나 즐거운 시간일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4박 5일 화이트스쿨이 끝나가는 밤, 선수들의 변화는 ‘일취월장’ 그 자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자기 자신이라고 믿었던 게으름, 나약함, 쑥스러움은 자기가 아니라는 걸. 빨갛게 물들기 위해 자기 자신을 하얗게 비울 수 있다는 걸. 끊임없이 변화하고 한계가 없다는 걸. 선수들은 그렇게 레드스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 나 역시 레드에 오기 전의 나를 화이트스쿨에서 마주하면서 레드스쿨의 코치가 되기 위해 하얗게 비워냈다. 그러면서 비워낸 나를 천천히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화이트스쿨에 오면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사라지면서 나란 존재가 ‘없는’ 존재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정리정돈을 대충해도, 젓가락질을 대충해도, 늦잠을 자고, 달리기를 못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화이트스쿨에서 변화하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얗게 된 나는 레드에 와서 빨갛게 물들 수 있고, 어딜 가서도 그 곳에 물들 수 있는, 나의 기본을, 밑거름을 찾은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내게는 한계가 없기에 하얗다는 건 무궁무진한 것이다. 그러니 선수들도, 그리고 나도 레드스쿨에 내리는 하얀 눈송이처럼 새하얗게 되어서 다가오는 내 자신의 혁명, 무가탈을 무한대로 끝없이 이루어 낼 것이다.  레드스쿨 이대로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