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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자랑

선수칭찬 (2020 R5)

이한별

175 0 20-12-25 20:57

우리 반 선수를 칭찬합니다.’

 

오늘은 정말 평범하게 시작해 보았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저는 선수자랑을 할 때 초반에 겉멋이 잔뜩 든 사설을 길게 늘어놓곤 합니다. 좋은 격언이나 시구를 인용하든, 음악을 틀든 말이지요. 하지만 오늘은 겉멋 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선수자랑은 그렇게 겉멋 들린 글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멋지고 아름답고, 또 행복하고 따뜻한 추억들이 담긴 이야기, 그리고 올해 저의 마지막 선수자랑시간이 될 오늘 만큼은 온전히 여러분들을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우리 반, 2020년 레드5학년을 칭찬합니다.’

 

작년에 어느 날엔가, 쌍둥이별 코치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내년에 몇 학년 담임하고 싶어?’ 여기에 대한 그 당시 저의 대답, ‘.. 학교에서 정해주는 대로 가라면 가는 거지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나요? 그래도 코치님 반 아이들은 애들 졸업하기 전에 담임 한번 맡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네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해가 바뀌어 지난 2월 겨울영어몰입이 끝나고 한 코치님으로부터 제게 문자 하나가 옵니다. ‘프코, 5학년 담임 축하!!’ 기분이 묘하더군요. 2학년이나 4학년을 맡게 될 거라고 해서 그리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왔다는 것, 이렇게 학교가 나를 믿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런저런 멋진 계획들을 많이 세웠었군요.

 

선수카톡방에 초대되어 1년간 함께 할 5학년 친구들과 인사를 한 후, 예정된 2월 개학일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너무도 심각하여 예정되었던 개학이 미루어지고, 그나마도 1달 동안은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었지요. 그때 1학기 선수대표로서 채원이와 성현이는 온라인으로 여러 선수 회의들을 진행하고 조율하면서 등교를 못함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공백을 잘 메꾸어 주어서, 레드선수회를 통솔하는 리더로서의 역량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성현이는 채원이와 함께 담임코치의 EBS수능특강 수업을 열심히 따라오려고 노력했던 점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사실 EBS수능특강 영어가 우리말 해석본만을 가지고 수업을 했어도 워낙 글의 내용이 어려워 따라가기 힘든 수업이었을 텐데, 끝까지 경청하려고 했던 노력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장면입니다.

 

날씨가 따뜻해져 꽃이 만발하고 풀냄새가 향기롭게 진동하는 5월 경천면의 하늘 아래, 세기의 달리기 대결이 있었습니다. 선수들은 곰돌이와 멧돼지 중 어떤 동물이 더 빠른지 가장 궁금해 했지만, 적어도 제겐 그 못지않은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먼저 말 한마리가 힘차고 우아하게 달립니다. 그의 이름은 강상효, 큰 키와 긴 다리에서 나오는 보폭으로 마치 쇼트트랙 선수가 커브를 돌 듯 몸을 15도 방향으로 틀어서 유연하게 커브를 달리는 것을 보면 정말 말이 달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요. 지금은 레드 5학년 부반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수고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먹이감을 놓치지 않으려 그 뒤를 필사적으로 쫒아 달려가는 듯 보이는 한 마리 사자가 나타납니다. 그의 이름은 노윤재, 당시 레드의 체육 부장이었지요. 지금은 레드의 선대가 되었습니다. 레드에는 체육에이스라 불릴 수 있는 선수들이 많이 있지만, 에이스 오브 에이스는 바로 상효와 윤재, 이 두 친구들이 아닐까 합니다. 이렇게 몸을 건강하게 가꾸어가기에 마음도 건강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6, 여름의 첫 머리에 독서몰입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년도 독서몰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사랑에 대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 롤을 해’, 그리고 치명적으로 섹시한 족장님의 우가우가’... 독서몰입 오프닝 영상이 아직 많이 뇌리에 남아 있네요. 평소에 보여주는 뚝심 있는 모습 답게, 윤재에게 인터뷰 거부당하고 후배들의 엉뚱한 답변을 들으면서도 끝까지 사랑이 뭐냐?’고 끈질기게 질문을 하면서 인터뷰를 한 하은이... 그리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을 하라고 외치면서 큰 웃음을 주었던 친구, 실제로도 5학년 학급 내에서 정말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 병우, 그리고 당시 부장으로서 올해 독서몰입의 그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을 도서문화부 부장 소진이... 덕분에 저도 롤에 입문해서 사랑에 대해 조금 더 배웠던 것 같네요. 초여름의 문턱에서 책과 사랑이 어우러진 축제에 초대해 준 하은이와 병우, 소진이의 열정을 칭찬합니다.

 

1학기의 모든 학사일정이 끝나고 7월 종강파티 때 연극부가 했던 공연이 가장 생각납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희곡이론을 전공수업으로 들어봤던 사람인지라, 대사, 동선, 배경, 음악 등... 하나의 연극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한지를 압니다. 연극에서는 욕심 많은 엄마역할을 하면서, 결코 많지 않은 시간에 대본과 캐스팅을 준비하며 연극부를 진두지휘했을 연극부 부장 하은이, 개구리로 변한 준화, 서울대는 꿈깨라며 팩트폭행을 날렸던 병우, 칼싸움이 인상적이었던 왕자 윤재, 그리고 짧았지만 망토를 걸치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왕비 역할의 민겸이, 그리고 천사모습을 하고 나타나서는 레드스쿨 광고를 20분이나 했다 말하는 가은이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댄싱퀸 채원이와 소진이에게 질세라 남자댄스팀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며 멋진 공연을 보여줬던 상효와 병우.. 밴드부의 대표 드러머 지훈이.. 그리고 최고의 하이라이트인 정욱이의 걱정말아요 그대’.. 아침햇살 할아버지도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았었지요. 이 모든 것을 통해 저는 종강파티 콘닥으로서 레드의 단합된 힘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것은 분명 우리 리더 5학년 친구들이 주축이 되어 주인의식을 가지고 준비해준 결과입니다. 특히 무대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른 정욱이의 용기를 칭찬합니다.

 

우리 친구들과 전북 부안으로 만리여행을 갔다 와서 바로 방학식이 진행되고 얼마 되지 않아 비가 세차게 내리던 7월 말, 영어몰입캠프가 있었습니다. 캠프시작 전 선수촌 방역을 돌다가 제 눈을 사로잡는 문구가 하나 있더군요. ‘에어컨 함부로 틀면 그날부로 지훈이형한테 사망 + 에어컨 한달 압수’... 빨간색으로 썼기에 더 위압감있게 느껴졌던 문구.. 저는 그 문구로 선수촌에서의 지훈이의 리더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 지훈이가 아무이유 없이 후배들을 괴롭히고 자신은 규칙 무시하면서 얼차려만 주는 그런 선배였다면 후배들이 그런 문구를 써가면서 지훈이의 말을 듣지는 않았겠지요. ‘묵해라는 지훈이의 자처럼, 인정받으려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면서 강한 리더쉽을 가진 지훈이를 칭찬합니다.

 

8월 여름방학 막바지 검고몰입캠프 기간이 끝나고 가졌던 5학년 회식시간에서 보았던 한 장면을 더 떠올려봅니다. 회식이 끝난 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나서서 뒷정리를 열심히 하고 솔선수범하여 청소를 했던 한 친구, 바로 민겸이에 대한 생생한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당시 레드에 온지 2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는데, 수처위주로 레드공동체에 잘 적응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앞으로 레드에서 더 멋지게 성장하게 될 늘 웃는 모습이 예쁜 민겸이를 응원합니다.

 

82학기 개학이 시작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개학날이 저의 생일날이었네요. 개학날이 워낙에 정신없고 바쁠 시기라 선수들이 그런 걸 준비해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날 점심때 친구들이 준비해 준 서프라이즈한 생일파티에 너무도 감동했네요. 지금도 너무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학시즌에 레드코치들이 늘 그렇듯이 매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9월 어느 날의 삶의 향연시간은 승현이의 활약이 눈부셨던 날로 기억합니다. 그 날 삶의 향연시간에는 사실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열띤 토론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시간이었지요. 다른 편에 있는 친구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편으로 데리고 오는 활동이었는데, 역시 승현이의 재치있는 입담으로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어갑니다. 저는 승현이의 입담이 참 부럽습니다. 그렇게 가을이 풍성히 익어갔네요.

 

그리고 겨울의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11, 바로 저번 주 국토순례가 있었습니다. 휴학했던 성현이가 오랜만에 돌아와서 준화가 조장으로 있는 특공대조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준화와 함께 특공대조 인솔코치가 되었고요. 이미 준화의 과거 기록들을 보기도 했고, 준화의 과거에 대해서 코치님들끼리 하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이렇게 후배들을 이끌고 묵묵히 걷고, 힘들어 하는 조원들의 가방도 들어주고 독려하는 리더, 두 번째날 장기자랑 시간에 특유의 재치를 발산해 낸 준화를 보면서 저는 레드가 존재하는 이유, 레드의 힘을 보았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멋지게 성장시켜주고 공동체를 빛내는 학교 말이지요. 준화는 이렇게 멋진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날개 위에서 함께 한 레드 5학년 친구들과 함께 한 추억들을 계속하여 하나둘 떠올려 봅니다. 이제 조금씩 겨울을 생각나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제 우리 친구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고3 시기를 앞두고 있네요. 벌써 내년 6학년을 함께하게 될 담임코치님도 내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의 이 차가운 아침공기에도 아직 봄날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저에게 우리 5학년들을 처음 만났던 그 따뜻했던 계절에 품었던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는 까닭이요, 비록 이제 얼마 남진 않았지만, 지금도 5학년 담임으로서 우리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훗날 언젠가 저의 서재에 걸려 있는 5학년 친구들의 단체사진을 보고 저의 아이가 저 사람들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빠가 널 사랑하는 만큼 그렇게 사랑했던 아이들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게 화려하고 따뜻했던 날에 활짝 핀 꽃들처럼, 2020년 레드 5학년이라는 이름의 봄은 저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것입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 마음 아물게 해,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